양산흥신소 사설탐정에서 상간녀 증거자료 남편의 바람의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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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이겨낼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신다는데 정말 무정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평생을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고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어서 어떤 상황이든 가리지 않고 해왔습니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고, 모진 소리를 들어가며 식당이나 캐셔로 돈이 되는 일용직도 서슴지 않았었죠. 그리고 이제서야 제 인생을 찾았는데 가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1. 기구한 팔자
20대 중반, 동방자들과 우연히 갔던 점집에서 저에게 자식 복은 있는데 남편 복은 없다는 해괴망측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그때에만 결혼 생각도 전혀 없었고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기 바빴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라고 흘려들었죠. 30년 후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넘어지지 않는 게 제 인생의 좌우명이자 모토였거든요.
2024년 2월.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이었을 때 남편이 잠결에 저를 보고 다른 여성의 이름을 말하더군요.
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참을 쳐다보니 그제서야 부하 직원을 부르는 게 익숙해서 실수로 튀어나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고 그 흔한 술주정도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실수일거라 판단한 제가 바보였죠.
2. 설상가상
왜 안 좋은 일들은 한 번에 일어나는지. 마침 운영하고 있던 사업체도 휘청거리고 대학생인 큰딸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습니다.
회사 일로 철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아이가 다쳐서 당장 보러 가야만 하고 거기에 남편은 지방 출장 가있으니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다음 주에는 믿었던 직원이 그만뒀습니다.
2월 말에는 둘째가 학교생활 문제가 있다 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학교에 불려 갔습니다.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아찔합니다.
어떻게 버텨냈는지 모를 시간들이었는데 지나고 나니 글 단 몇줄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였네요.
그동안 남편은 바쁘다는 핑계만 댔고 그 모든 일을 저 혼자 알아서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남편의 상간녀에게 소식을 들었습니다.
늙고, 자존심만 센 아줌마보다 본인이 더 좋다고 했다면서요.
3.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뤄놨던 것, 매일매일 성실하고 꽉 채워서 살아왔던 것들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없어져버린 이후에 막막해질 두 딸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이겨내고 나면 반드시 평안이 찾아오리라 신은 견딜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신다 되뇌이며 하나하나 문제를 처리해나가기 시작했고 상간녀 문제는 양산흥신소 의뢰했습니다
'사설탐정' 제가 양산흥신소 이용할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던 것 같은데요.
그나마 다른 곳들 보다는 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고 전직 경찰 출신에다가 합법적인 증거 수집만 진행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겪었던 심증과 상간녀의 문자 그리고 남편의 잦은 외박과 출장기록을 빠짐없이 전달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쉴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4. 맞서 싸웠습니다.
4일 정도 뒤에 양산흥신소 수집한 증거들을 건네받을 수 있었는데 충격을 받다 못해 얼굴에 핏기가 가셨습니다.
무려 4년이나 만남을 지속해 왔고 아예 살림도 따로 차려서 밖에서는 배우자 행세를 하고 있더군요.
이미 회사 야유회에도 몇 번 같이 가서 사모님 소리를 듣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두가 한통속이었던거죠.
5. 빛이 보인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본인이 보낸 문자 하나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제가 아직 남편과 가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 드러낸 것이죠. 이로써 유책배우자 및 상간녀소송까지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이 또한 양산흥신소 덕분인지라 감정을 충분히 추스른 뒤에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따로 건넸습니다.
이런 게 바로 전래동화 속 권선징악일까요. 남편은 맨 처음 외도 사실을 부인하다가 제가 양산흥신소 증거들을 내밀자 제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꼈습니다.
제가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그 여자는 해주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랬답니다.
남자로서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애교부리고 그래서 이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토록 오래 관계를 지속해왔다고 합니다.
제 앞에서 직접 통화를 해서 만남을 정리하는데 수화기 너머 그 여자는 오빠, 오빠 하며 아내가 시킨 말에 속지 말라는 말을 하더군요.
6. 끝나지 않은 내 인생
아이들에게 모든 실상을 털어놓을지 정말 오랜 시간 망설였습니다.
거의 3개월이 넘게 숨기고 감췄지만 집안의 냉랭한 분위기까지 숨겨지진 않았기에 큰아이가 퇴원하고 나서 자리를 마련하고 담담하게, 이용 가능한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작은딸은 분노하고, 큰딸은 울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엄마와 함께하겠다는 든든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지금 남편은 그 여자의 집에서 살고 있고 저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고 맞지 않는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기본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쉽지 않았고 저도 결국 실패한 사람이 되어버렸네요.
이어 30년 전의 점쟁이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정말 제가 자식복은 있었나 봐요. 무너지려고 할 때, 용서할까 고민했을 때 가차 없이 제 손목을 잡고 일으켜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희생하거나 참지 않고 당당하게 제 인생을 살아가려고요. 두 딸이 사회인이 될 때까지 이 몸 닳아 없어질 때까지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려고 합니다.
사설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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